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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삼각은 안 됩니다. 각하. 제 말 듣고 계십니까?”

 

 

이바라가 드물게 긴장된 얼굴로 핸드폰을 붙들고 통화하고 있었다. 핸드폰 너머에서는 아무 소리도 돌아오지 않아, 이바라는 위가 쓰려왔다. 아 제발. 잔뜩 찌푸린 미간을 꾹꾹 눌러 펴면서 제발 대답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빌었다. 혹시 끊어졌나 싶어 핸드폰 화면을 확인하지만 잘만 연결되어 있었다.

 

 

“각하, 제발 듣고 계시죠. 각하, 삼각은 안 됩니다. 각하의 캐해는 사각에 블랙이란 말입니다!”

 

 

핸드폰 너머로 살짝 부스럭, 하는 소리와 함께 ‘...하지만.’ 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입니까, 예?! 소리를 빽 지르고 싶은 충동을 꾹 눌러낸 이바라가 핸드폰에서 고개를 돌려 한숨을 푹 내쉰 다음 다시 조곤조곤 통화했다.

 

 

“각하께서 제게 대본을 안 받아가신지도 꽤 되었지만, 여태껏 큰 난리가 나지 않은 것은 각하의 평상시 모습과 제가 여태 빌딩해 놓은 캐릭터가 어느정도 납득이 가는 선에서의 변화.. 그러니까 캐해석에 크게 괴리가 없기 때문인 점 스스로도 이해하시고 이용하고 계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럼 지금 들어온 화보가 각하의 어떤 이미지를 원하는지도 이해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제발.

제발

제발 사각 수영복으로 골라 주십시오. 예? 지금 예? 이 자신, 각하에 대한 신뢰가 흘러넘쳐 식은땀이 날 지경입니다! 손발도 차가워져서 커피를 막 내려마셔도 뜨겁지 않아 아주 좋습니다. 그건 긴장 상태라는 뜻이라뇨. 하하! 전혀 긴장하지 않았습니다!”

 

 

웃고있는 입꼬리가 바르르 떨릴 것 같았다. 아 젠장. 아! 왜 갑자기 이런 고집을? 진짜.. 쓸떼없는 고집을? 핸드폰 너머 나기사의 목소리는 태연하기만 했다. 오늘 단독으로 수영복 화보 촬영을 보내는 게 아니였는데. 악착같이 같이 갔어야 했는데! 오늘은 영상화보 리허설 러프만 하겠다길래. 화보 치곤 일 되게 귀찮게.. 꼼꼼하게 하시네, 생각했던 게 불과 3시간 전이였다.

영상화보 러프를 할 게 뭐가 있지? 싶었는데 화보 뿐만이 아니라 신제품에 매장까지 같이 보이도록 하고 싶었는지 거기서 나기사가 마음에 드는 수영복을 고르는 장면을... 하필 그걸 자율에 맡겨서. 심지어 그걸로 화보를 찍겠다고 해서. 뭐 잘 하시겠거니 했는데 톡에 날아온 손바닥만한 삼각 수영복 사진에 이바라는 당장 전화를 걸었다. 오늘 최종본을 찍는 게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여기가 쓸떼없이 일을 두 번 하는 곳이라 정말정말 다행이다!

...많이 별로야? 다들 아무거나 상관없다고 했는데. 그 말에 이바라는 용케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당장 미팅에 회의 다 취소하고 날아가? 하지만 날아간다고 이게 통제가 되나? 심각한 얼굴로 스케쥴러를 들여다보고 있던 이바라는 다시 전화 너머에 크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정말 간절함을 담아 얘기했다.

 

 

 

“..삼각이 안 되는 이유요? 아니... 아니 씨 양심이 계십니까? 그걸 뭐 지금 삼각 어디다 꾸겨넣으시겠다는 얘기신지. 예?”


“...하, 당연히 들어가기야 들어가겠죠. 들어가기는 하겠지만 그럴 필요가 있으시겠냐고요. 남들은 줄어보인다고 기피하기도 하는... 아 뭐, 이런 얘기까진 할 필요 없고. 더 편한 길이 있으시잖아요. 왜 왜.. 왜 굳이 위험성을 감수해야 할 필요가 있-.”

 

“아직 그렇게까지 짙은 남성성 어필은 할 필요 없습니다-!!!! 한다고 해도 20대 후반이나 30대를 위해 아껴놓은 거란 말입니다! 제발! 각하께서야말로, 삼각 수영복에 꽂히신 이유가 뭡니까? 자신, 이렇게 맹렬하게 반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높아진 언성을 참아내지 못한 이바라가 분에 못 이겨 책상에 이마를 콱 박았다. 어떡해. 지금이라도 싹 다 미뤄? 미팅 시간을 확인해보니 30분 조금 안되게 남아 있었다. 이미 상대가 출발했을 시간이다. 지금 취소했다간 욕을 바가지로 들어먹을 것이다. 일단 각하를 돌아오시라고 하자, 오늘 다 찍는 게 아니니까... 그 전까지 어떻게든 각하를 설득하면 되겠지. 그래, 이바라. 이정도 설득과 프레젠테이션은 껌이다. 삼각을 사각으로 바꾸는 일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다. 기간도 넉넉하게 일주일이나 있지 않은가.

 

 

“각하, 오늘은 그만 돌아오시는 게.. 삼각을 보면.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 전하와의 행복했던 옛날 기억이요. 하.. 그게 떠오르니까 삼각이 좋으시다는 겁니까? 아니 그럼 최소한 10살 전후의 기억 아닙니까, 그거? 옛날에 뭘 입고 노셨던 간에, 10년이 넘은 기억이지 않습니까. 지금 그때보다 두 배나 나이 드셨습니다. 몸도 두 배는 커지셨고, 거기는 두 배 이상 커지셨을 거라고요.. 제발!!! 누가 수영복 화보에서 천진난만 어린시절의 즐거운 추억 같은 걸 기대한단 말입니까 누가! 치명적인 섹시함과 노출을 기대하죠!!”

 

 

이바라는 의자에 털썩 뒤로 몸을 기대며 통화를 이어갔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탓에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씨익 씨익 숨을 골랐다. 모르실 리가 없다. 한 길 사람 속도 천 길 대중들의 취향 같은 것도 나기사가 더 잘았다. 분명 이렇게 구는 이유가 있을 거다. 이렇게 좆같.. 까다롭게 구시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삼각이 안 되는 이유라면 충분히 납득하셨을 법 하게 다 설명했다고 생각하는데, 도대체 뭘 노리고. 한 길 나기사 속 알기란 도통 쉬운 것이 아니었다. 요새 들어 점점 더 그랬다. 설득이 문제가 아니였네, 이바라는 속으로 혀를 찼다. 하지만 이게 무슨 컨퀘스트같은 대형 프로젝트도 아니고, 고작 삼각 수영복으로 큰 그림을 그려봤자 뭘 그릴 수 있다고 이런.. 생떼를..

 

 

“..사각 수영복에 대한 기억이 없으셔서, 예. 화보 촬영 전에 좋은 기억을 만들어두고 싶으시단 말씀이시군요. 아, 그런 거라면 제가 개인 해변이라도 당장 매수해서 스케쥴을 조정해 볼 수 있습니다. 핫핫하!!! 그 정도라면 자신, 얼마든지! 네네, 그 정도면 되는 겁니까? 당장 스케쥴 보고 일정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실제 화보 촬영까지 촉박하니, 어.. 멤버 다 같이요? 그건.. 그,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이브는 여름이 워낙 성수기여서 말입니다...”

 

 

급하게 짬을 낼 틈이 도저히 없습니다. 적어도 이 앞으로의 일주일은 쉴 틈도 부족할 만큼 일이 들어차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자신이라도 그 자리를 최대한 메꿔보도록, 까지 얘기한 이바라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책을 워낙 좋아해 간접적 경험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고 쌓인 나기사가 뭐 언제부터 이렇게까지 경험주의였다고 이 죽도록 바쁜 시기에 바다를 가겠다고...

 

 

 

“각하 혹시... 자신이 저번에, 여름휴가는 계획이 없다고 해서...”

 

 

 

이바라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이미 뱉어버린 말, 나기사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

 

 

 

“...빌드업 하신 건 아니시죠?”

 

“..후후, 글쎄.”

 

 

 

...이바라와의 여름휴가, 기대하고 있을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겼다. 허... 허! 이바라는 기가 차서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당장 다시 전화를 걸어 뭐라 하고 싶었지만 손님이 올라오고 계시다는 연락에 이를 뿌드득 갈았다. 완전 말려들었단 패배감에 얼굴 근육이 파르르 떨렸다. 퍼*!!! 갓뎀!!!! 이바라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핸드폰만 죽일 듯이 노려볼 수 밖에 없었다.

 

 

 

 

 

 

 

뜬구름 사냥

나기사x이바라

 

 

 

 

 

 

나기사에게 여름은, 아주 미묘하게 한가한 계절이였다. 간간히 들어오는 광고나 화보 촬영 외에는 두드러지는 메인 활동이 없었다. 그나마 드라마티카가 8월 일정을 잡아 놓는 정도.

여름에 죽도록 바쁜 것은 선릿스마일로 여름 내내 뛰어다니며 바쁜 이브와, 그 이브의 스케쥴 관리를 맡은 이바라였다. 특히나 최근 들어 서머송을 내곤 이브와 같이 여름행사를 휘어잡고 있는 크레이지-비, 트윙크까지 눈코 뜰 새 없어 이바라는 잠 잘 시간을 아껴가며 일을 해야 했다. 물론 무엇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 중에, 나기사에 대한 관리도 완전히 놓아버리지는 않았지만... 한창 집중관리 하던 시절과 비교한다면 비교적 느슨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저러다 쓰러지지 않을까, 날도 덥고 무리하는 것 같은데. 나기사는 걱정스런 얼굴로 이바라를 힐끗 살폈다. 한 편으로는 전화를 받으며 바쁘게 이메일을 확인하고, 스케쥴을 조정해가며 이동 동선을 정리하는 모습이 짐짓 천수관음 같아 보일 지경이었다. 과로로 팍 쓰러지기라도 하면 차라리 그걸 빌미로 잡아다 푹 쉬게 할 수 있을 텐데, 이럴수록 자기 관리가 중요하다며 영양제란 영양제도 다 챙겨 먹고, 평소 그게 먹는 거냐 싶던 밥도 든든히 잘 챙겨 먹고, 최소 4시간 이상은 숙면을 취했다. 파고 들 틈이 없었다. 이바라는 여름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셈이었다.

 

 

 

“...너무 바쁜데.”

 

 

 

전화를 내려놓기가 무섭게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서 회의실로 뛰어가는 이바라를 바라보며 나기사는 어제 있었던 드라마티카 회의를 회상했다.

 

 

-

 

 

 

“싱그럽고- 찬란한 여름! 아아, 멋진 계절입니다! 연극의 성수기! 열정적인 계절!”

 

“히비키, 여름 찬양은 그 쯤 하고.. 이제 그만 표제를 발표해라.”

 

 

 

머리카락 끝에서 싱그러운 풀잎을 피워내려던 와타루의 기행을 케이토가 저지했다. 뿌- 하곤 잠시 입술이 댓발 튀어나왔던 와타루는 금방 웃으며 8월의 드라마티카 일정을 발표했다. 우리 드라마티카가 이번 여름을 그냥 넘길 수는 없다며, 8월 셋째 주에 첫 막을 올리기로 했다.

 

드라마티카는 미묘하게 리더의 비율이 높았다. 리더가 아니더라도, 리더에게 그만한 발언권은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 스케쥴 조정이 수월한 편이었다. 첫 공연 일정을 정했으니, 이 다음으로는 여름 휴가를 조정하기로 했다. 봄부터 쉴 새 없이 굴러왔기 때문에, 그 전에 쉬어가자는 의미로 많은 그룹들이 여름휴가를 계획하고 있었다. 8월로 넘어갈수록 단체 연습이 중요하니까 최대한 맞춰 보자며 각자 그룹의 휴가 계획을 한 명씩 발표하기 시작했다.

 

피네는 에이치의 스케쥴에 맞춰 다같이 휴양지 리조트에 간다고 했다. 발키리도 여름이 주력인 유닛은 아니어서 이 틈을 타 같이 전시회를 가거나, 맛있는 걸 먹으러 간다고. 홍월은 여름 축제 위주로 행사가 잡혀 있어 축제 스케쥴에 이어 휴가를 즐기기로 했단다. 토모야는 니-쨩의 종강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웃었다. 나이츠는 각자 보낼 거라고 동시에 대답했다. 이번 광고 촬영이 끝나면 다 같이 일주일쯤 푹 쉬기로 했고, 호쿠토도 문자로 뭔가 바쁘게 얘기하더니 휴가 일정을 알려 왔다. 나츠메도 잠시 전화통화를 하고 돌아와 휴가 일정을 알렸다. 마지막으로 나기사에게 시선이 몰렸을 때, 나기사는 드물게 초조함을 느끼며 핸드폰 화면을 두드렸다. 이바라가 전화도 문자도 대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잘 모르겠네.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대답을 받아 전달할게.”

 

 

 

아주 급한 건 아니니까 지금 당장 재촉할 필요는 없다는 대답을 들으며 드라마티카 회의는 해산했다. 회의실 문을 닫고 나올 때까지도 이바라는 대답이 없었다.

그건 그렇고 다른 유닛들은 모두 다 ‘여름휴가‘ 계획을 세워 놓았다는 것이 놀라웠다. 에덴은 ’휴가‘라는 개념으로 쉬어 본 적이 없었다. 나기사만 미묘하게 붕 뜬 것도 올해 들어서 처음 있는 일로, 작년까지만 해도 인지도를 최대한 끌어오기 위해 아담도 쉴 새 없이 움직였었다. 7월 말에 히요리 생일이 있어서 짧은 파티를 한 정도. 그 외엔 ’여름이니까 놀아야지!‘ 라는 카오루의 말에 비브리온이 다같이 야외 수영장에 간 것 정도였다.

 

 

 

회상에서 돌아와, 나기사는 회의실에서 이바라가 돌아오기를 잠시 기다렸다. 스케쥴러를 힐끗 보니 아주 오래 걸리는 회의는 아닌 것 같아, 적당히 ’전국 여름휴가 베스트 10!‘ 잡지를 읽고 있기로 했다.

 

다 같이 쉰다, 라. 나기사는 뭘 하면 좋을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름축제 라는 걸 가 봐도 좋을 것 같고, 맛집 투어도 같이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저번에 가 봤던 바다를 에덴과 다 같이 간다면. 그것도 기분 좋을 것 같았다. 이바라에게도 ’에덴 여름 휴가 계획‘ 이 있을까, 있다면 어떤 계획일까. 늘 이런 계획과 스케쥴을 담당하던 것은 이바라였으므로 나기사는 그가 휴가 계획도 갖고 있으리란 믿음에 한 치 의심도 없었다. 작년엔 없었던 것 같지만, 올해엔 모든 유닛들이 갖고 있는 걸로 봐서는 아직 자신에게 전달이 안 된 건가- 같은 생각을 하며 회의실에서 돌아온 이바라를 반겼다.

 

 

 

“에덴 여름휴가 스케줄 말씀이시죠?”

 

“...응.”

 

“없습니다만.”

 

“..응?”

 

 

 

나기사는 약간 지친 기색으로 돌아온 이바라에게 기대에 찬 얼굴로 ’에덴 여름휴가 계획‘ 에 대해 물었다. 이바라는 기대에 찬 나기사의 얼굴이 부담스러워 살짝 피하며, 바닥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기사는 이해를 못 했다는 듯이 눈을 두어번 꿈벅거렸다. 이바라는 재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물론, 에덴의 단체 여름 휴가가 없는 것이지, 각하께서 원하신다면 자신 최선을 다해 각하의 스케쥴을 언제든 조정해 보이겠으니 말씀해 주시기를! 드라마티카에도 에덴은 개인별로, 스케쥴이 되는 대로 휴가를 취할 예정이라고 전달해 주시면 됩니다!”

 

“...왜 없지?”

 

“예?”

 

 

 

나기사는 마치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이 없다‘ 는 얼굴로 이바라를 내려다보았다. ...드라마티카의 다른 유닛들은 다들 같이 ’여름휴가‘ 라는 것을 즐기던데. 우리는 왜 없지? 기대가 배신당한 탓에 살짝 불쾌한 듯이 미간을 찌푸린 나기사가 말을 이었다.

 

 

 

“...한창 기온이 높은 시기에 잠시 쉬어가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에 이 때에 다들 통상적으로 쉬는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이해했어. 유닛들은 대체로 다 같이 보낸다는 것도. 왜 에덴에는 그것이 준비되어 있지 않지, 이바라?”

 

“준비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애초에.. 계획이 없었습니다. 각하. 아시다시피 이브의 성수기는 여름으로, 아이돌이란 자영업의 영역이라! 학교나 직장과는 조금 다른 환경입니다. 그렇다보니 여름에는 워낙 바쁘고, 이 때를 극대화해서 여름 하면 이브! 여름 하면 코즈프로! 이러한 인식을 받아놓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합니다. 때문에 전하께서도 쉴 틈 없이 움직여 주고 계시고요! 때문에 각하께서는 편하실 때에 휴가를 갖겠다. 해 주시면-”

 

“...그럼, 이바라의 여름 휴가는 어떻게 돼?”

 

“없습니다.”

 

“...이바라도 없어? 어째서? 과도한 업무의 직장인이 효율을 위해서라면 쉬어가는 것이 맞을텐데.”

 


“자신, 부소장이라는 임원의 직함을 달고 있어 직장인이기는 하나 자영업의 마인드에 가까운 점! 전하께서 쉬지 않는데 자신이 두 다리 펴고 쉴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올 해에는 이브 뿐만 아니라 크레이지 비도, 트윙크도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으니 올 여름은 코즈프로가 지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바쁨은, 자신에게 아주 기분 좋은 압박감 같은 것이죠. 휴가가 따로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기분 좋은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앗핫핫하!!!”

 

 

 

이런, 전화가 들어오는군요... 그럼 실례하도록 하겠습니다. 휴가 관련해서는 언제든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이바라는 마지막 말을 던지듯 얘기하곤 순식간에 회의실로 빠져나갔다. 사무실에 덩그러니 남은 나기사는 눈만 두어번 꿈벅였다. 없단다. 있었는데 없어진 것도 아니고 애초에 있지 않았단다. 보통은 이렇게까지 물어보면 어떻게든 스케쥴을 조정해 만들어오는데, 그럴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 정말 쉴 틈 없이 스케쥴이 꽉꽉 들어찬 모양이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바라의 테이블 위 달력은 빈틈없이 새까맣게 글씨로 빼곡했다.

 

하지만.. 아주 잘, 쥐어짜내기만 하면.. 이바라는 다음주 이틀 정돈 괜찮을 것 같은데.

 

혼자서 휴가를 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는 나기사가 지긋이 스케쥴러를 들여다보았고,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흥미로운 눈을 빛냈다..

 

 

 

-

 

 

 

“즐거우십니까.”

 

“...응. 아주 기대돼.”

 

 

 

그래, 즐거우시면 됐습니다... 이바라는 한숨을 푹 길게 내쉬며 차에 올랐다. 계략과 술수로 이 바쁜 시기에 쉬게 한 것이 조금이나마 마음에 걸리는지, 이 정도 불쾌한 티를 내는 것에 나기사는 아무 터치도 하지 않았다. 기왕 떠나는 거, 즐겁게 놀아봅시다! 할 환경도 되지 않는 이바라는 차에 앉기 무섭게 노트북부터 열었다. 기분 좋게 해안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창 밖을 나기사는 들뜬 얼굴로 바라보았다. 늘 이런 이동은 일을 하러 가는 것이였기 때문에, 온전히 놀러, 쉬러 간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기분이 들뜨는 일이라는 걸 몸소 체험하는 중이었다.

 

드라이브 중간 휴게소에 들러 ’여름 한정 판매!‘ 가 붙어 있는 우유 얼음 빙수를 하나씩 손에 쥐었다. 못마땅한 이바라의 시선이 따라오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칼로리가 높은 것도 아니고, 괜찮겠죠.. 하며 못 이기는 척 허락해 주었다. 한 입 먹고는 머리가 찡 울리는지 눈을 질끈 감은 이바라의 미간을 나기사가 살살 문질러 펴 주며 웃었다.

 

이바라가 매수했다던 개인 해변 근처 신사가 여름 축제로 떠들썩했다. ...저것도 이바라가 알아본 거야? 했더니 뭐, 저번에 축제 즐거워 하셨었으니까요.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역시 이바라가 처음부터 끝까지 여름 휴가 계획을 세워 주면 더 좋을 텐데. 나기사는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그를 차 밖으로 끌었다.

 

 

 

“호텔 체크인부터 하고 싶습니다만..!”

 

“...아직 안 늦었잖아, 잠깐 노트북 내려두고.”

 

 

 

이따가 불꽃놀이도 해 주나 봐. 호텔에서 보이겠지? 확실히 새로운 자극들 사이에 들뜬 나기사는 평소보다 조금은 템포가 빠른 것 같았다. 저번에는 없던 게 있다며 점포 하나하나에 눈을 빛내고 있었다. 나기사는 하나하나 천천히 구경하며 걷다가도 그를 놓칠까, 수시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반 조금 모자라게 죽은 눈을 한 이바라의 손목을 잡고서 나아갔다. 잡힌 쪽도 아, 거기 계셨군요.. 하는 정도만 반응할 뿐이었다.

 

 

 

“...저거, 이바라가 잘 했던 사격 게임이지.”

 

“아아, 여기는 상품 품목이 좀 다르군요. 바다 근처라서 그런 걸까요. 엄청 근 암모나이트 인형이라니.. 수족관 상품 직한 것이 메인이라니.”

 

“...갖고 싶네. 저것도 맞출 수 있어?”

 

“핫핫핫핫하, 각하, 당연한 걸 물어보시는군요!”

 

 

 

...기분 좀 풀렸나 봐, 나기사는 과장되게 웃어 보이며 두 명분의 사격 게임을 결제하는 이바라의 뒤를 따라갔다. 이바라가 시원스럽게 암모나이트 인형을 뒤로 떨어뜨렸고, 나기사도 두 번째 해 보는 실력에 어울리지 않게 고가의 상품들을 맞춰 주머니 가득, 두 팔 가득 인형을 안고서 게임장을 떠났다. 기왕 왔으니 여기서도 뭔가를 먹자, 하고서 주변을 둘러보니 늘 손가락만한 꼬치만 봐 왔던 닭꼬치가 세 배 쯤 커진 것이 있어 나기사가 눈을 빛냈다.

 

 

 

“튀겼고 염분도 높고 당도도 높아 보입니다만..”

 

“...하지만 다른 음식들보다는 단백질 측면에서 충분할 거라고 생각해.”

 

 

 

...양이 너무 많아 보이니까, 하나 사서 같이 나눠 먹자. 그럼 괜찮지?

말 끝에 붙어 오는 제안에 이바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기사가 뿌듯한 얼굴로 용돈을 털었고 그 지출을 마지막으로 둘은 축제를 벗어나 해변가로 향했다.

사람이 북적거리던 축제의 장소를 벗어나 해변으로 향하니 거짓말처럼 단숨에 소음이 잦아들고 파도 소리만 가득해졌다. 사박사박 발 아래서 흐트러지는 모래가 부드러워 기분이 좋았다. 한 손에는 암모나이트 인형을 들고, 다른 손에는 닭꼬치를 들고 풍경을 구경하듯 한참을 걷던 나기사는 ...왜 여기는 아무도 없지? 하며 이바라를 돌아보았다.

 

 

 

“각하께서 아이돌이시니까요. 혼란이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개인 해변으로 준비했습니다. 저희 외에 외부인의 출입은 허용되지 않으며, 저 쪽에서 서핑도 즐기실 수 있..기는 한데, 부상 위험이 있으니 웬만하면 지금 추천드리지는 않습니다.”

 

“...응, 이해했어.”

 

“그럼 이제 호텔 체크인부터 해도 될까요? 체크인 시간은 진작에 지났기 때문에!”

 

 

 

아 이제야 좀 노트북을 들여다 볼 수 있겠군요. 분명 아까 트윙크 앞으로 컨셉 체크 요청 메일이 왔던 것 같은데- 하며 걸음을 서둘러 호텔로 향했다. 정확히는 향하려고 이바라가 막 방향을 틀었을 때.

 

 

 

“...히요리군에게 보내주고 싶으니까, 바다 사진 한 장만 먼저 찍어도 될까?”

 

“예? 아, 예. 그 정도야 얼마든지! 약간 휴식한 후, 다시 나오면 또 다른 풍경일 겁니다. 일몰 시간이 이 부근은 조금 늦는 편이라. 그 때의 사진도 같이 보내드리면 좋겠군요.”

 

“...그렇구나. 사진으로나마 힐링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는 약간 힘겹게 손에 핸드폰을 쥐곤 빤히 이바라를 바라보았다. 왜..? 하는 얼굴로 이바라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나기사는 앞에 와서 서 보란 듯이 고갯짓을 해 보였다. ..제가 들어 있으면 딱히 전하께서 좋아하실 것 같진 않은데. 조금 투덜거려봐도 나기사는 들은 체도 안 했다. 결국 두어장 바다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나서야 호텔로 향할 수 있었다.

 

호텔의 오션뷰 전경이 끝내줬다. 짐가방을 내려놓자마자 깡생수를 들이킨 이바라는 ppt를 살펴보곤 뭐 이런 기획을, 하며 바쁘게 노트북을 두드렸다. 나기사는 뭘 할까.. 고민하는 얼굴로 호텔 창 너머의 바다를 구경하며 여유롭게 거닐었다.

 

 

 

“각하, 저기 제 트렁크 안에 흰색 파우치 열어 보시면.”

 

“...응?”

 

“각하께 어울리는 수영복 디자인의 샘플을 모아 놓았습니다. 미리 확인해보시고 화보 당일 초이스에 미스 없으시길 바랍니다!”

 

“...응, 꼼꼼하구나.”

 

“각하께서 집으셔야 하는 수영복 라인의 특징은 블랙. 사각. 너무 화려하지 않은 무늬가 좋습니다. 보통 수영을 오래 하게 되면 점점 화려한 걸 찾게 된다고는 하지만 저희는 그런 시장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화보 자체의 시너지를 이끌어야 하는 것이니까.. 아, 수영복이 너무 수수해보인다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신, 이 기획을 받은 그 순간부터 각하의 복근을 요란화려하게 만들어 놓았으니! 아니면 화이트의 이런 재질도 괜찮습니다. 그 중에 오늘 당장 입고 싶으신 게 있으시다면 무엇이든지 선택해 주시기 바랍니다!”

 

“앗.. 이바라, 비가 와.”

 

“예?! 아니, 그럴 리가 오늘 강수 확률은 30% 정도로.. 아아, 운이 없군요. 30%에 당첨된 걸까요? 금방 지나가는 소나기면 좋을 텐데요. 수영복만 입고 나가시기엔 조금 쌀쌀할 수도 있겠습니다. 실내 수영장을 빌릴 수 있는지 지금 체크해 보도록-”

 

“...구름이 얕아. 아마 금방 지나갈 것 같은데.”

 

 

 

나기사는 이바라가 이야기 한 파우치를 털어 수영복을 살펴보며 곁에 와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노트북 화면은 여러 자료와 메신저로 어지럽고 부산스러웠다. 화답하듯 쉴 새 없이 자판을 두들기는 이바라의 옆에서 세상에서 제일 여유로운 나기사가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이바라와 느긋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후후... 삼각 수영복에 잘 넘어와 줘서 고마워. 이바라라면 분명 금방 눈치를 챌 줄 알았는데, 정신없이 바쁜 와중이었으니 알아차리더라도 모른 척 넘어와 줄 것 같았어.”

 

“느긋하게 이야기를 할 상황은 안 되지만... 따로 뭔가 하고 싶었던 말씀이라도? 언제든 편하게 말씀해 주시면 자신,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만.”

 

“...업무 이야기가 아니니까.”

 

“...”

 

 

 

나기사는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던져 놓고, 알아서 잘 해석해 따라오란 듯이 군다. 이바라는 그런 대화에서 늘 조금 피로감을 느끼곤 하지만 지금처럼 피로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별건 아니고, 그냥.. 아 씨 안 그래도 죽도록 바쁜데 간단히 말 해 주면 안 되나? 용건만 간단히. 안 되나? 그런 마음이 불쑥 뱃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이바라에게 여름을 챙겨주고 싶었어. 나는 늘 챙김 받으니까.”

 

“자신..? 여름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만.”

 

“...만끽?”

 

 

 

나기사는 자신이 단어의 뜻을 잘못 알고 있나? 하는 얼굴로 이바라를 마주 보았다. 아무리 최선의 결과를 위해 컨디션 관리와 건강관리를 놓지 않고 있다고는 해도, 평소보다 푸석한 뺨과 부슬부슬하게 떠 있는 머리카락, 살짝 퀭한 눈 밑을 하나하나 관찰하며 고개를 저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도 만끽이라고 할 수 있다는 건, 무대에 설 때 느끼는 것 감정 같은 일종의 도취나 각성 상태에 있다고 봐도 되는 걸까.. 나기사는 느릿하게 눈을 맞추었다.

 

 

 

“...에덴은, 봄에 히요리 군이 꽃놀이를 챙겨 줘. 가을에는 쥰이 책갈피로 쓰면 좋다고 예쁘게 말린 낙엽을 주고. 겨울엔 다같이 모여 연말 분위기를 즐겼지.. 여름만 제외하고 말이야.”

 

“하지만 곤란합니다. 이런 식의 일정 변경은! 자신, 이 여름은 한 몸 불살라 바쁜 걸 만끽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챙겨주신 각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 감사하지만 자신 현재 무리하고 있지 않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맡아 고통스러워 하는 과정도 아닙니다. 리프레시가 필요한 때가 온다면 제가 먼저 이야기를 드릴 테니, 그런.. 삼각 수영복 같은 걸로 불안하게 만들지 말아 주십시오! 위가! 위가 아파오는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름을 채워 넣고 싶었어. 우리는 계약서가 없지, 그리고 나는 그것에 아주 가끔.. 허기짐과 더 견고히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이바라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다는 이야기는 아니야. 나를 놓아 줄 생각이 없는 것, 잘 알고 있어. 그러니 이건.. 나의 개인적인 욕심이야.”

 

“개인적인 감정이란 말씀이십니까? 그런 유대와 신뢰라면 공적인 부분이라고 생각이 됩니다만.”

 

“..이바라와 계절에 관해 함께하는 기억을 갖고 싶었던 거야. 계절은 매년 내가 피할 수도 없이 돌아오는 거니까. 같은 추억을 공유함으로서 공동체의 유대감을 높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이바라가 늘 하는 이야기지. ...하지만 그 지점이, 나를 아주 가끔.. 목마르게 해.”

 

“..자신, 저도 모르게 실수한 부분이 있었습니까?”

 

“아니, ...앞서 말한 대로 이것은 개인적인 욕심이야. 내가 유대감에서 스스로 만족되지 않는다는 감정을 받는 것. 좀 더 짙은 것을 종종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이바라는 단숨에 곤란하다는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이바라가 입을 꾹 다문 건 보기 드문 일인데. 하며 후후 웃던 나기사는 창 밖을 보았다. 살짝 어둑어둑해지기 직전, 겨우내 비가 그치고 구름이 깨끗하게 개어 있었다.

 

 

 

“...답변이나 보답을 바라고 한 이야기는 아니야. 이바라도 준비되지 않았을 테고, 나도 아직 정확히 그 감정을 마주 본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기회가 된다면 말해두고 싶었어. 그리고 어쩐지... 이번 휴가가 그런 타이밍이 되어 줄 거라고 생각했어.”

 

“...그, 럼 그게 정확히.. 그럼..”

 

“...이바라는 계속 이바라의 일을 해, 그거면 괜찮아.”

 

 

 

일단 지금은, 같이 바다를 보러 가자.

 

이바라는 석양 가득 들어오는 짙은 주황빛이 가득 들어찬 방은 온통 피할 수 없는 나기사의 시선 아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름.png

님의 후기!

이바라 휴가보내기가제일 힘들었지만

쓰다보니 휴가분량보다 휴가좀가달라고빌고잇는제가 더 길어졌지만

괜찬아........... 낙입이행복햇음좋겟어요 :)

제출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글이나 그림에 대한 저작권은 각자에게 있습니다. 즐거운 추억으로 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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